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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어는 날의 일기'에서
 민정애  | 2011·02·02 18:39 |
    박완서의 일기

    박완서(엘리사벳)의 어느 일기에서
    작성: 김영숙 2011년 1월 27일 목요일 오전 3:01

    나이 40 넘어서 문단에 데뷔한 박완서 엘리사벳.
    딸 넷 그리고 아들 하나를 둔 그녀에게 아들은 단순한 아들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아들도 잘 자라주어 서울대 의대를 나와 인턴 수업을 받는 기대 이상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1988년 병원 당직 날  교통사고로 먼 길을 떠나보내야 했다.
    석 달 전 남편을 암으로 잃은 지어미로서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당한 일이다.
    그는 작가로서 절필을 선언하고 수녀원에 들어간다.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으리라.
    그 때의 아들을 잃은 어미의 애통한 마음을 카톨릭잡지 "생활성서"에 수필형식으로 일년간 기록한다.
    그것을 모아 만든 것이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수필이나 소설이라보다 그녀 자신의 일기이다.
    그녀가 믿는 하느님께 한 말씀만 해달라고 목 놓아 불렀다.
    왜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데리고 가야만 했는지 그 한마디만 해달라는 가슴 아픈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애원하는 아들 잃은 어미의 절규를 외면하고 끝내 박완서의 하느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이제는 원망이었다. 하느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느냐 에서부터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한 말씀도 당신의 자녀에게 내리지 않을 수 있냐는 데까지 질문과 원망이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주었지만
    88올림픽이 그대로 열린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수 없을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 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것을 어찌 견디랴.
    아아 내가 독재자라면 1988년 내내 아무도 웃지 못하게 하련만....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 본다."

    일년 후 마지막 장에서 그녀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일년전, 내가 그렇게 고통하고 신음할 때, 수없이 되물었던 질문,
    하느님, 한 말씀만 하시옵소서. 그러나, 하느님은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없으시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을 지나올때, 내가 그렇게도 원망할 하느님이 계셨다는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의 원망을 받아줄 하느님이 안계셨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 없을것이다.
    고통의 순간에 수많은 원망섞인 질문을 던질때, 그 많은 원망을 고스란히 들어주셨던 하느님
    그분의 침묵은 더 많은 원망을 듣고자 하셨던 하느님의 배려였던것이다"
    젊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세계 속엔
    그 자신과 그의 부모형제가 걸던 얼마나 다채롭고 풍부한 미래가 포함돼 있는가.
    특히 자식이 부모의 소망은 물론 허영심까지 충족시켜줄 만큼 잘 자라 부모가 한창 우쭐해 있을 때,
    부모는 어리석게도 자식이 성취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나 역시 그랬었다.
    아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동일한 축(軸)을 가지고 마냥 팽배해가고 있었다.
    그 나름의 독립, 혹은 연애나 결혼 등으로 에미로부터 분화(分化) 해나가기 직전,
    모든 가능성과 희망을 공유하던 에미로서는 가장 행복한 착각의 시절에
    아들은 홀연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그의 죽음은 하나의 세계의 소멸이 아니라 두 개의 세계의 소멸을 뜻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들이 인턴 과정을 끝마치고 전문의는 무슨 과를 택할까 의논해왔을 때 생각이 났다.
    그애는 나만 반대하지 않는다면 마취과를 하고 싶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나는 아들로 인하여 자랑스럽고 우쭐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누가 시키거나 애써서가 아니라 그애 스스로가 선택한 학교나 학과가
    에미의 자긍심을 충분히 채워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내 무지의 탓도 있었지만 마취과는 어째 내 허영심에 흡족치가 못했다.
    나는 왜 하필 마취과냐고 물었다. 그애는 그 과의 중요성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중요하지 않은 과가 어디 있겠니?
    이왕 임상을 할려면 남보기에 좀더 그럴 듯한 과를 했으면 싶구나."
    나는 내 허영심을 숨기지 않고 실토했다. 그때 아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어머니,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장에서 환자의 의식과 감각이 없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다가
    무사히 수술이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별볼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환자나 환자 가족으로부터 고맙다든가 애썼다는 치하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요.
    자기가 애를 태우며 생명줄을 붙들어준 환자가 살아나서
    자기를 전혀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쓸쓸한 일이겠어요.
    전 그 쓸쓸함에 왠지 마음이 끌려요."

    그 아들에 그 에미랄까, 나 또한 아들의 마음이 끌린 쓸쓸함에 무조건 마음이 끌려
    그애가 원하는 것을 쾌히 승낙했다.
    늘 사랑과 칭찬만 받으면서 자라 명랑하고 거침이 없고
    남을 웃기기 잘하고 농담 따먹기에 능하던 아들의 전혀 새로운 면이었다.

    나는 그때 아들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
    품안의 자식인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알아버렸다가 아니라
    알아야 할 무진장한 걸 가진 대상으로 우뚝 섰을 때 얼마나 대견했던지,
    그리고 그때의 그 앎의 시작에 대한 설레임까지
    꼬바기 밝힌 새벽 빛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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