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안의 집을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머니
 喜園  | 2005·05·12 12:01 |
-喜園-

근심걱정 몰고 온
세월은 그리도 빠른지

아파 오는 관절
비어가는 뼈마디
지탱하기 버겁다는 듯
더딘 걸음 걸으시며

주는 데만 익숙하셨던
내 어머니!
그것이 삶의 행복이라 여기며
몰래 흘리신 눈물은
고단한 삶의 흔적이지요

허전한 마음 채울새 없이
지독한 외로움도 모르는
당신의 침묵은
제 가슴이 저려 옵니다.


가슴이 찡해 노네요.
이런 시를 쓰는 따님을 두신 어머니는 행복하시겠어요.
밝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 보여드리는 것이
자주 뵙는 것 못지 않게 어머니의 빈 마음을 채워드린다는 것
알고 있겠지요.

05·05·13 18:40

예원혜
★세계를 놀라게하고있는 황우석교수에 대한 글을 읽으며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학창시절을 힘들게 보내었기에
오늘의 그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고등학교 시절 첫 시험 성적이 전교생 480명 중
400등이었다고 동아일보가 24일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1969년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한 황 교수는
1학년 중간고사에서 400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충남 부여의 은산초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3년 장학생으로
중학교를 마친 황 교수로서는 충격적인 성적이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황 교수는 이후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겠다는 각오’로
친구들과 ‘등안대기 클럽’을 만들어 공부에 매진했고 2학년 때는 전교 200등,
3학년 때는 상위 10% 안에 드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동아일보는 “중학생 때부터 대전의 친척집에서 기거한 황 교수는 차비가 없어
1년에 두 번밖에 고향집을 찾지 못했고, 이발비가 없어 생활지도 담당교사로부터
머리를 깎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고등학교 때는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하며
학교에서 학비를 지원받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특히 특별활동으로 3년 내내 원예반에서 활동했던 황 교수는
고등학교 때 장래 희망을 ‘축산’이라고 적었다”며 “고교 3학년 때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라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수의대를 선택했다. 어릴 때부터
소를 키웠던 어머니를 도우며 소에 대한 최고 전문가가 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라고 덧붙였다.

05·05·24 22:20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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